남자 혼자서 주말 뷔페를 즐기는 방법

일요일 오후 1시 40분.
오랜만에 혼자 애슐리에 갔다. 오늘 개점이래 혼자 온 남자손님은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다.
여럿이 오면,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재미가 있지만 혼자서는 무슨 재미?
일단 먹는 거 자체에 집중할 수가 있고,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식사하면서 하는 행동들을 천천히 관찰하면서 분석해보는
재미가 있다. 오후 1시 40분에 도착해서 종업원이 구석탱이에 있는 자리랑 홀의 한 가운데에 있는 자리 두 군데를 추천하길래
당연히 홀의 한가운데에 있는 자리를 골랐다. 괜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자리에 앉았으니 주문을 해야 할 차례, 애슐리는 메뉴판이 따로 없는 대신에 테이블에 놓여 있는 안내지를 보고 주문하면 된다.
예의 상 한 번 훑어보다가 "송로버섯 오일로 구워 낸 버섯소스를 얹은 안심 스테이크"에 잠깐 혹했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예정대로
"샐러드바만요!"라는 대사를 쳤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로 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첫 접시는 이것저것 많이 담게 된다. 옛날에는 연어 샐러드 메뉴가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 그 메뉴는 애슐리 프리미엄점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 주말에 남자 혼자 뷔페에 와서 밥 먹는 것도 드문 일인데,
매장 한가운데에서 사진까지 찍으려니 부끄럽지 아니하다고 말 할 수 없지 않았지만 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을거란
주문을 외우면서 사진까지 열심히 찍었다.




두 번째 접시부터는 뱃속에 여유가 생겨서 음식을 담을 때 장식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세 번째 접시다. 아무래도 뱃속의 여유와 음식의 데코레이션은 비례하는 거 같다.




오랜 뷔페생활에서 터득한 점 하나는 디저트가 식사의 중간에도 좋다는 것이다. 차와 케잌을 천천히 먹으면서 다른 음식들이
소화되는 걸 천천히 기다려주면 과식도 막을 수 있고, 속도 편안해진다.




리치를 먹으면서 벌레 복불복 게임도 즐길 수 있게 한 배려가 돋보인다. 예전의 애슐리는 차갑게 먹어야 맛있는 리치가
늘 미지근해서 불만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꽁꽁 얼어있었다. 나는 적당하게 시원한 리치를 먹고 싶었는데...




레드체리 단호박은 이번에 새로 선 보인 메뉴인데, 의외의 조합이었지만 달콤한 맛이 서로 잘 어울렸다.




 이것도 이번에 새로 나온 레드페퍼 카펠리니 파스타라는 메뉴인데, 국물있는 쫄면의 맛이랄까.




사람들은 다 "짜장"이라고 부르는데 왜 굳이 표준말을 "자장"으로 고집하는 지 모르겠다. 아무튼 '중국집'이 아닌 다른 식당에서
만드는 짜장은 뭔가 좀 빠진 맛이 나서 아쉬울 때가 많은데, 의외로 애슐리의 짜장소스는 중국집에서 만든 것과 퀄리티가
거의 비슷했다. 다른 메뉴인 간장 볶음밥 위에 얹어 먹으면 더 맛있을 거 같다.




"블랙망또 캘리포니아 라이스"라는 신메뉴인데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질 않았다. 지금 다시 보니까 새삼스럽게 먹고 싶어진다.




고구마에 메이플시럽과 계피가루를 얹고 통으로 구운 메뉴인데, 아무리 봐도 크기가 너무 '통'이라 하나만 먹어도 금방 배가
부를 거 같았다. 맛이 궁금했지만 '뼈를 내어주고 살을 취하는'우를 범하는 거 같아서 참기로 했다.




웨지감자는 아주 익숙한 패스트푸드의 냄새와 맛이 나서 그런지, 찾는 사람들이 많은 메뉴다. 그릇 옆에 케챱도 놓여 있지만 
굳이 그것까지 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맛이 짭짤하다.




땅콩을 뿌린 순살치킨도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



 
이것저것 먹다보니 입장한 지 벌써 1시간 20분이 지나고, 내 양쪽 옆자리 테이블의 손님들도 두 번이나 바뀌었다.
그 중에서 내 왼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4인 가족을 보니 40대 중반쯤의 아저씨가 가장인 거 같았다. 아무리 봐도 평소에는 양식을
멀리하고 무조건 쌀밥과 찌개로 밥을 먹어야만 직성이 풀릴 거 같은 분위기였는데 아니나다를까, 접시에 담아오는 메뉴들도
'최대한 집밥에 가까운'모습을 한 것들이었다. 나야 원래 혼자서도 먹으러 올 만큼 이런 음식들을 좋아해서 상관없지만, 주말에는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데도 가족들을 위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먹으러 온 가장의 무게에 잠시 숙연해졌다.

이제 나도 배가 점점 불러서 마지막 접시를 가져왔다. 조금만 담아오려고 했는데 손이 잠깐동안 또 다른 자아를 가졌었다.




좀 아까 마지막 접시라고 했던 거는 물론 메인 메뉴를 얘기한 것이었다. 디저트는 해당이 안 된다. 아무튼 브라우니가 제법 진한
초컬릿 맛이 나서 좋았다. 잉글리시 브레드... 어쩌고 하는 저 두꺼운 식빵도 의외로 폭신하고 부드러운 식감이라 먹기 좋았다.




오후 3시 20분.
애슐리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임의로 기념일을 정한 뒤에 방문을 하면, 기념일 전후 7일동안 치즈케잌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 물론, 나도 케잌을 챙겼다. (2010년부터는 치즈케잌 대신에 만 원을 적립해주는 걸로 바뀜)
옛날에는 음식으로 한을 푸는 용도로 뷔페에 갔기 때문에 바깥에 나올 때면 늘 배가 꽉꽉 차서 만족감보다는 괴로움이 앞섰는데
지금은 그냥, 다양한 음식들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생각이 바뀌니까 1시간 40분 가까이 있던 것 치고는 적당한
포만감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싸 갔던 치즈케잌은 저녁 때 지인들과 넉넉히 즐겼다. 애슐리에서 봤던 가장 아저씨가 가족들에게 했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먹으면 피자집보다 싸고 좋네!"
연어메뉴가 사라진 것만 빼면 시간제한, 10% 봉사료 없이 1인당 12,900원에 느긋하고 다양하게 한 끼를 즐기고 올 수 있어서
참 마음에 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