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 요리의 끝, 신림동 홍오로(내용추가)

신림동 녹두거리를 지나가다 꽤 여러 번 본 거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음식을 어떤 식으로 파는 지 감을 잡을 수 없던 간판과
인테리어 때문에 왠지 가기가 좀 꺼려졌던 곳이다.
지지난 주에도 여자친구랑 그냥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그 앞을 지나가다가 하도 궁금해서 잠깐 서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머리에 수건을 두른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발견하고 가게 밖까지 나와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걸 계기로 주말에
한 번 들르게 됐다.
 
나름대로 녹두거리의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고 자부하는 지인들조차 여기가 어딘지, 무슨 음식을 파는 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이쯤 되면 주인아저씨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좀 더 알아보기 쉬운 간판으로 바꾸면 어떨까하는 제안도 해볼만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식사시간마다 빈자리를 찾기 힘든 곳이 됐다. 역시나 간판이고 뭐고, 식당은 음식맛 자체가
최고의 홍보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메뉴 중에 탕수육과 납작만두가 있어서 이 곳의 정체성에 약간 혼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 같은데, 여기는 절대 '중국집'이
아니라 홍합이 들어간 면, 찜, 탕이 주 메뉴인 홍합요리전문식당으로 보면 될 거 같다. 처음 갔던 날은 일단 납작만두와 
"홍해면"만 시켰다.





반찬은 양파절임 딱 한가지인데, 적절하게 새콤달콤한 맛이 다른 요리들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양파절임을 두 번째 다 비워갈 때쯤에 납작만두가 먼저 나왔다. 경상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음식인 거 같다. 납작만두는 만두라기보다 부침개에 가깝기 때문에 소스가 살짝 기름지지만 어쨌든 자주 생각난다.
몇 년 전에 홍대의 "요기"라는 분식점에서 3,500원 주고 먹었던 거 같은데 여기서는 2,000원에 먹을 수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드디어 이 집의 간판메뉴라고 할 수 있는 "홍해면"이 나왔다. 일단 비주얼은 '10점 만점에 10점'
홍해면은 홍합이 특히 많이 들어 간, 약간 덜 매운 해물짬뽕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서울 수도권에서 4,500원짜리 면요리에
홍합을 이렇게 많이 넣어주는 곳은 여기 말고는 또 없을 거 같다. 





이 곳의 광고카피를 "눈으로 먼저 먹는 홍해면"으로 하면 어떨까. 가운데에 있는 고기고명은 돼지갈비 같았는데, '불맛'이
느껴졌다. 일본라면의 고명으로 자주 쓰이는 '차슈'나 '멘마'와 비교해도 고명으로서 전혀 꿀리지 않는다.





홍합을 한참 건져내면서 먹다보니 겨우 국물 속에 감춰져있던 면이 나왔다. 면발은 일반 중국집 짬뽕이랑 거의 똑같았지만
약간 맑은 국물은 보기보다 참 얼큰하고 담백했다. 여름에 먹는다면 땀을 꽤 흘려야 될 거 같다.  





홍해면 두 그릇에서 먹다가 건져 낸 홍합껍데기들...





인간의 지나친 어업으로 인해 순식간에 고갈된 해양자원...





처음 왔다간 날의 다음 날에도 김고문과 학진이를 데리고 와서 총 4명이 점심을 먹었다. 주인아저씨가 홍합탕을 
서비스 해주셨는데, 약간 우유맛이 느껴질 정도로 국물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났다. 이 홍합탕은 인원 수대로 주문하면
홍합이 무제한 리필된단다. 홍합엔 타우린이 들어있어서 원기회복에 좋다는데, 다음에는 홍합탕으로 끝을 보고 싶다.
 



주문한 홍합찜이 나왔다. 생각보다 좀 매콤했지만 역시나 손을 점점 부지런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2,3명이 한 접시 시키면 적당할 거 같다.


  


이번에는 나 혼자 "홍해면" 대신에 "홍볶면"을 시켜서 먹어봤다. 매콤하게 양념 된 면발이 입에 착착 붙었지만 아무래도 국물이
없는 게 좀 허전했다. 역시 최고의 선택은 값도 똑같은 "홍해면"인 거 같다.





4명이서 하도 이것저것 잘 먹다보니 주인아저씨가 탕수육을 서비스로 턱 하니 내오셨다. 튀김옷은 얇고, 고기가 두툼해서
씹는 맛도 좋고, 소스도 마음에 들었다.





볶음밥은 아직까지 메뉴판에 정식으로 들어가 있지 않아서 아는 사람들만 시켜 먹을 수 있는 메뉴인데, 볶음밥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홍오로에서 꼭 한 번 먹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낌없이 들어 간 날치알의 양부터 다른 집과 차원이 다르다.






홍대나 삼청동이라면 홍합요리 하나 먹기 위해서 매번 최소 1시간은 기다려야 할텐데, 가게가 신림동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직접 메뉴를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주인아저씨의 자부심에 어떤 메뉴든 믿고 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당이다.